경제적자유 자극제

일본 직장문화가 한국보다 최악인 이유

라까니안 2025. 7. 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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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벌어진 한 기업의 만행은 차라리 중세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실적을 내지 못한 직원에게 알몸 사진을 찍게 하고, 그것을 동료에게 유포하며 모욕을 주는 방식. 그것이 경영이라고 믿는 자들이 만든 '기업 문화'다.

회식에 빠졌다고 뺨을 때리고, 교통 위반 벌금까지 직원에게 전가하는 이 모든 행태가 한 회사 안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그것도 연봉 1억 원이 넘는 고연봉 기업에서. 높은 연봉은 이토록 처참한 수치심의 보상인가. 아니면, 인격을 팔아넘기는 계약의 전제인가.

한국 직장도 그리 녹록한 곳은 아니다. 야근, 갑질, 조직 내 위계와 억압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선은 지켜진다.

상사가 부진한 직원에게 알몸 사진을 요구하고, 그것을 유희 삼아 동료들과 공유하는 일은 없다. 인간이 회사에서 다뤄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의 직장은, 적어도 직원을 인간으로 전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실적 미달이 곧 존재 가치의 소멸이며, 사람을 숫자로 환산하고 쓰레기로 처리하는 작업이 이토록 태연하게 진행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야만이다.

일본은 산업화의 선진국이지만, 그 안의 조직문화는 여전히 사무라이 군대에 머물러 있다. 권위는 폐쇄성을 먹고 자라고, 상명하복의 문화는 그 어떤 항변도 허용하지 않는다.

문제 제기는 곧 배신이며, 저항은 무능의 증명으로 간주된다. 그렇기에 고발은 언제나 퇴사 후에야 가능하다.

살아 있는 동안은 침묵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 된다. 그 속에서 인간은 점점 지워진다. 이 지우개의 이름이 곧 ‘기업 문화’라 불린다는 사실이야말로, 가장 큰 아이러니다.

한국 직장은 이보다 나은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이란 존엄의 이름은 아직 남아 있다. 아무리 실적이 부진해도, 그 실망을 수치심으로 갚아야 하진 않는다.

우리는 비난당할 수 있지만, 벗겨지지는 않는다. 구호는 많고 실천은 부족하더라도, 최소한 법과 여론이라는 장치가 있다.

그리고 그 장치가 조직을 겨냥할 수 있는 힘도 있다. 문제는 많지만, 문제제기 역시 가능하다. 이건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 직장 다닌다는 건, 때때로 참을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불합리한 일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주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이 일상이, 사실은 누군가의 삶에선 너무도 먼 이상향일 수 있다는 사실. 실적 부진을 벗은 몸으로 증명해야 하는 나라에서, 우리는 그저 야근하고 말았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할지도 모른다.

회사를 다닌다는 건 단지 월급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아침, 나라는 존재를 사회에 들이밀고도 무사히 돌아온다는 뜻이다.

조직은 사람을 키우기도 하지만, 파괴하기도 한다. 일본에서의 사례는, 후자에 대한 극단적인 경고다. 우리는 적어도, 아직은, 그런 곳에 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 사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감사라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완벽하진 않아도, 인간으로 설 수 있는 자리. 그것만으로도 직장은 지옥이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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