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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에 대한 단상

당신이 가난한 건 '가난의 습성'을 못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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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가난을 미화하는 사람이 많다. 숱한 작가들도 가난을 측은지심의 시선으로 묘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욕망에 충실하기로 선택한 작가들 대부분이 가난할 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게다.

약자에 대한 공감과 따뜻한 시선은 물론 중요하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난의 실체를 경험해보지 않은 책상물림들의 설익은 글이 난무하는 것은 재고해봐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문학에선 가난이 동정의 대상으로 자주 다루어진다. 그것이 마치 운명론적인 사태인 것처럼, 착한 심성을 가졌으나 사악한 세상 때문에 이용당했다는 투로 그 현실을 정당화하기 일쑤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가난한 자들을 직접 만나 겪어보라고. 그럼 그러한 낭만주의적 생각이 현저히 줄어들 거라고. 새벽녘 인력시장에 직접 나가보거나, 서울역 노숙자들을 오래 관찰해보라고.

우리가 생각했던 가난은 대체로 혐오스러운 것이며, 가난에 절어 사는 사람은 결코 착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가난을 택한 사람들이다. 그 늪에 가라앉는 데 안주하며 언제나 가진 자, 성공한 자, 부유한 자를 탓한다.

생각해보라. 부자들을 적폐로 규정하고 사회를 개혁하며 가난을 타개하자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정말로 부유해지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본 이들일까.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사업을 일구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며 고용을 창출하고 정당한 세금을 납부해 지역 공동체에 기여해본 이들일까. 상당수 아닐 것이다.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가난한 자들을 따라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억만장자들의 습관을 몸에 익히려 하는 동시에 가난한 자들의 특성을 관찰하고, 그것을 내 안에서 걸러내려고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가난의 세습은 주로 부모의 습성을 물려받은 탓이 크지만 부모랑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터득한 것일 때도 많다. 우리는 그것을 짚어봐야 한다.

우선 가난한 사람은 돈 받는 것 이상으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초과 근무한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고용주나 상사가 그런 요구를 하면 자기를 더 부려먹으려는 개수작일 뿐이라 여긴다.

돈 있는 사람은 전부 그 놈이 그놈이라 지레짐작하고 더 열심히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저 멸시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게 전부다.

실제로 고용주들이 더 헌신적으로 일해줄 직원을 곁에 두고 싶어한다는 것을, 이를 통해 기회를 주려고 한다는 것은 눈꼽만큼도 상상하지 못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가난을 만든다.

그리고 제 분수를 모르며 아무 일이나 안 하려 한다. 예전에 받았던 최대 액수 이하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정말 능력 없고 돈 없고 현실이 어려우면 아무도 찾지 않는 일이라도 찾아 막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 일 몇 년간 빡세게 해서 월급 대부분을 저축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한데 그런 행동일랑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비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며 버는 족족 써버린다. 과거 산업화 세대들은 어떠했나. 일자리가 너무도 부족해 아무 일이나 일단 닥치는 대로 했다. 일을 안 하면 굶어죽으니 사생결단으로 일한 것이다. 그러다 기회를 잡고 빈민에서 서민으로 서민에서 중산층으로, 그중 일부는 중상층, 부자로 도약했다.

그러나 지금 수많은 빈민들은? 몸에 편한 일을 찾으려고만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해도 굶어죽지 않는 시대라는 데 안주하면서 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둔다. 그저 흥청망청 써댄다.

서울역 지하철 노숙인 중에 돈이 생기는 족족 술이니 고기를 사서 써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돈을 꼬깃꼬깃 아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내키는 대로 그냥 써버리고 만다. 비상금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이다.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여자들 부르는 유흥업소에서 써버리기 일쑤인 이런 사람들의 현실을 일컫어 사회의 쓰레기라고 하는 것이다(그 현실이 궁금한데 직접 관찰해보기 저기하면 유튜브에서라도 노숙자 관련 영상들을 살펴보라.).

그러면서도 경험자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제 개똥철학을 신봉하고 남의 충고는 귀담아듣지 않는다. 대체로 이들은 현실이 이 모양인 원인이 자기한테 있음을 완강히 부정한다. 그리고 세상 탓을 하고, 한 번도 면전에서 대해본 적 없는 부자들을 욕한다.

자기가 가난한 것은 못 배워서, 게을러서가 아니라 있는 놈들이 내가 가질 돈을 뺏아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깨뜨리지 않은 채 강력한 흑백 논리에 따라 살아간다. 자기가 잘못됐다는 것은 추호도 인정하지 않으니 불안감도 별로 없다.

물론 모든 가난과 가난한 자들을 이렇게 치부해선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 중에 정말 아픈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살리려고 병원비를 쏟아붓다보니 가난해진 경우, 질병과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 혼자가 돼버린 독거노인의 경우 등등 정말로 어려운 조건 속에 놓인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의 가난은 어떻게든 사회가 책임을 지고 보듬어줘야 한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 택한 가난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분명히 제 의지로 돌파해낼 수 있는 가난인데 불구하고 가난의 자리에 멈춰서기로 한 태만의 존재들 말이다.

앞선 이야기들은 그런 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니 명심하자. 이러한 가난의 습성을 어떻게든 걸러내지 않는 한 경제적 자유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빌게이츠는 말했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죽을 때도 가난하다면 그것은 당신의 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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