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지만 가난 자체를 모욕해선 안 된다. 가난을 욕 보이지 마라. 그것은 탈출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돈 벌이 수단으로 마케팅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난을 욕 보이는 저런 인간들이야말로 경멸받아 마땅하며,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가난을 욕 보이는 사람은 그 자신 역시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임을 증거할 뿐이다.
빈곤 포르노는 어느 나라에나 있었고,
그것은 빈곤 그 자체보다 더 사악한 것이다.
예전 포스팅을 하나 소개한다.
당신이 가난한 건 대체로 당신 탓입니다
“가난의 원인은 개인의 게으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소득 불균형이 심해지고 양극화가 이어지는 것은 사회 구조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위정자들, 부와 권력을 움켜쥔 이들이 자기들에겐 유리하지만 가난한 자에게 불리한 사회 시스템을 설계한 데 따른 결과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을 혁파해야 한다."
스스로 진보인 척하는 가짜 먹물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세상이 불평등한 원인은 개인에게 돌려선 안 된다는 믿음이 골자다. 사회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고치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자신감부터가 오만하기 짝이 없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자연적 본성(경쟁의식, 이기심 등)을 깡그리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의 힘을 지나치게 과신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조적 현상이라는 게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기회의 불평등, 과정의 불공정, 결과의 부정의. 부모가 가난해 자녀가 기회의 평등에서 열외됐다. 그래서 교육받지 못했고 교육을 못 받는 바람에 조건의 평등에서 열외됐다. 적절한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얻지 못해 다시 가난해지는 빈곤의 대물림이 고착화됐다.
이러한 매커니즘을 신봉하는 자들은 가난을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간주한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 적극적으로 빈곤 퇴치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주로 개인의 합리성과 이성의 힘을 절대시하는 자칭 사회주의자들이 좋아하는 발상이다. 세상을 개조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이들은 믿는다. 물론 그 결과는 정책 실패와 규제의 역설에 의한 온 국민의 고통 증가다.
우리나라에선 소위 진보인 척하는 위선자들이 저런 소리를 많이 해댄다. 위선자라고 함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그것을 이용하면서 검은 혓바닥으로는 '기회의 공정, 과정의 평등, 결과의 정의로움'을 외쳐대기 때문이다(아, 이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여.).
물어보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소위 무학인데, 부자로 자수성가한 이들은 뭐란 말인가. 한낱 운이었나? 왜 그들은 찢어진 가난을 딛고 세상의 리더로 올라설 수 있었을까? 다수가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빈자의 부모 중 상당수는 빈자가 아니라는 통계는 주변에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빈곤은 꼭 대물림되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한국은 '절대적 가난'의 시대를 지난지 오래다. 국제노동기구가 매해 발표하는 어린이 노동자 통계, 아프리카 등 빈곤국 지표 등을 갖다 댈 때가 아니라는 소리다. 국민 총생산량이 턱없이 모자라 일자리도 드물고 거리의 빈민들이 역병처럼 들끓는 그런 세상을 상상하지 말란 것이다. 전태일이 분신자살했던 시대를 이제는 들먹일 필요가 없단 소리다.
2021년은 '상대적 빈곤'의 시대다. 한국은 국내총생산으로 세계 10위권대 국가이며, 이미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민소득은 3만 불에 근접한 고소득 국가다. 징징거릴 시간에 주변을 둘러보라. 그리고 거울을 보라.
서울역 등 빈민들이 모여드는 곳을 제외하고서 거지들이 눈에 띄는가.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 실업자도 잘 없다. 있더라도 그런 이에겐 실업수당이 주어지며 자활의 기회가 제공된다.
삶이 괴롭다면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이 도처에 즐비하기 때문이지 내가 삼시 세끼를 먹지 못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해서는 아니다. 우리는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먹물들처럼 제 믿고 싶은 대로 관념적으로 볼 게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실체를 봐야한다.
그리고 못 배운 것이 실업으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3D업종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교육 안 받아도 얼마든지 일 구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있는 공장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서 대학을 가지 못한 이라면 이런 곳 기숙사에서 지내며 수년간 월급을 악착같이 모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싫으니 안 하는 것이다.
젊어선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했다. 편의점 알바는 어떠한가. 최저임금이 급속도로 올라버린 한국에서 최저임금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주변과 비교하고 친구와 도토리 키 재기 하며 소비지출에 모은 월급 쏟아붓기 전에 미친 듯이 모으는 기간을 몇 년 이어가면 자수성가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본인이 의지와 노력만 갖고 접근해도 절반 이상 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쏙 빼놓고 구조적 불평등이니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다. 한심한 일이다.
우리는 고소득 시대의 가난한 가정, 가난한 자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그들 스스로의 잘못은 없는지를 말이다. 사회가 구제해 주려고 해도 구제되지 않는 사람들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 이들에겐 이런 문제들이 공통적으로 꼭 있다.
우선 빚이 있는 가정이다. 가족 중 한 구성원이 술, 도박, 과소비 등으로 빚을 지고 있는 경우다. 다른 가족이 그 밑 빠져버린 독에 물을 채우려 하루하루 개고생을 한다. 그러나 빚은 그 노력을 배반하며 눈덩이처럼 늘어날 뿐이다. 주로 원인 제공자는 아버지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아버지는 아버지 이름을 박탈해 쫓아내도 모자라다. 사회의 잉여로서 신세한탄이나 하며 국가가 주는 개평이나 받아먹으려 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온 가족을 괴롭게 하면서도 자책감 한 번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이런 부류는 늘 일확천금을 꿈꾼다. 투자를 할 줄 모르고 그럴 역량도 안 되니 투기를 한다. 돈은 쉽게 한 방에 벌 수 있을 거라 여기고 팔랑귀이기 때문에 사기꾼들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그러다 결국 다 날리고 가족 구성원들은 기어이 피를 토하고야 만다. 애당초 정신자세가 글러먹은 이런 인간들은 수중에 돈이 꽤 주어지더라도 빠르게 탕진하고 만다. 돈을 감당할 만한 돈의 주인이 못 되어서다.
또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또는 어머니로 인해, 그것이 아니면 친인척이나 지인 빚보증을 잘못 서주었다가 재산을 한 방에 날리고 멘탈이 붕괴된 탓에 재기불능의 상태가 돼버린 경우다. 이 역시 자업자득이기 때문에 될 되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이런 이들은 쉽게 구제가 안 된다. 재산이 압류되고 허름한 반지하 단칸방으로 내몰렸으면서도 옛 향수에 젖어 비싼 옷, 비싼 양주, 비싼 차를 고수하는 이런 사람, 꼭 있다.
그리고 가장 흔한 부류라고 하겠는데, 가족 구성원 모두 일을 하지만 그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저마다 탕진하는 경우다. 집안이 중하류층 이하 계층이라면 온 가족이 열심히 모은 돈을 어떻게든 잘 굴려 주거환경을 꾸준히 개선해야 할 진대, 그러지를 않는다. 아들은 버는 족족 차에 꼬라박고, 딸은 고쳐도 나아지지 않는 용모에 성형비를 써댄다. 가장은 가장대로 사치를 사치로 이해하지 못하며 지내니, 점입가경일 뿐이다.
이 역시 매우 흔한 부류인데, 맹모삼천지교라고 애초에 공부할 깜이 안 되는 자녀를 무리하게 대학 보내려다 머리당 수백만 원씩 꼬라박고 자녀 교육에 캐시 플로를 다 날리는 케이스다. 가족 수입의 상당 부분을 교육비로 쏟아붓다 보니 더 나은 내일은커녕 하루하루가 궁핍하다. 이런 경우는 중산층 이상 가구에서도 매우 흔해서 자식이 당당히 과 점퍼 입고 다닐 수준도 못 되는 형편없는 대학이나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도 교육비를 지원해 주다 보니 온 가족이 가난해진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가난이 사회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고착화된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정말로 그런 경우가 있다면, 정말 불운하게도 가족 구성원이 심한 병에 걸렸거나 장애가 있는 등 물리적으로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사회가 적극 나서서 구제해 주면 된다.
하지만 절대적 가난이 아닌 상대적 가난의 시대에서 소비생활 격차, 나와 너의 비교로 인한 박탈감이 불행의 더 큰 문제가 되는 이때에, 가난이 진실로 내 잘못이 아닌 사회 잘못인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나의 가난이 가난의 자세 때문이 아닌지, 게으름과 나태함, 지나친 소비 지출, 나 자신을 통제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은 아닌지를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그러면서 깨달아야 한다. 부유해지는 길은 뼈를 깎아내듯 나 자신을 탈바꿈시켜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이다. 자신에게 고착된 가난의 습관을 완전히 벗어버릴 때라야 비로소 부의 첫걸음을 떼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경고한다. '가난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세상 잘못이다. 그런 세상을 우리가 고쳐주겠다.' 이런 거짓말을 일삼는 자칭 진보 먹물들의 말은 절대로 귀담아 두지 마라. 그들은 당신이 계속 가난해지게 유도함으로써 본인들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부를 영구 지속시키려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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