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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위한 당신의 이야기

서울역 노숙자를 동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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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서울역 노숙자를 통해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는가.

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질 않는다. 스스로 택한 길이지 않은가. 저 사내는 사지가 멀쩡하다.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지도 않다(그가 빠진 정신의 병은 게으름과 태만이라는 병이다다. 어떻게 보면 참 고약한 병이다).

그 어떤 막일을 해도 밥 벌고 먹고 살 수 있다.

한데 왜 거리의 삶을 택했나.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노동하지 않아도 밥을 주고 책임질 가정도 없으므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렇게 노동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온갖 비루한 변명을 대며 현 상태를 정당화한다. 사회적 잉여의 처지를 변명해댄다.

그 자신도 "젊고 튼튼한 사람, 멀쩡한 애들"인데도 "그 사람들에게 왜 주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말은 기가막힌데 그게 곧 자기 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울역 노숙자를 통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다.

가난한 현실은 자기가 자초하는 것이다. 내가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을 외부 요인으로 변명하지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 흙수저여서, 부모가 가난해서, 사업이 망해서, 사기를 당해서 등등 변명은 대려면 엿가락처럼 늘어뜨리며 댈 수 있다. 그러나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는가.

모든 문제의 원인은 차라리 나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는 것이 현실을 개선하는 지름길이다. 나의 정신이 나약해서, 나의 책임감이 모자라서,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이 지경이 됐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스스로 만들어놓은 한계를 돌파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재테커로 나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바로 이것이다.

변명하지 마라. 둘러대지도 마라.

노숙을 택한다는 것은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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