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의 저자 정선용(필명 정스토리) 씨는 요새 누구보다 왕성한 필력으로 좋은 글을 줄기차게 써보이고 있다. 이번 글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마찬가지. 그가 말하듯 직장인으로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살아남더라도 정작 남는 것은 어떤 말 못할 슬픔이다. ‘자(者)의 삶’에서 가(家)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한 자들은 은퇴 이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미리 대비하지 않았기에 더더욱 괴로운 분투의 나날이 펼쳐져 있다. 더이상 회사는 삶의 안전마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데 따른 결말. 이 가운데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정 씨는 말해주고 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정독하시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
정선용(정스토리)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분에 나는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나는 은둔 외톨이로 지내던 스무 살에 이 시를 처음 읽었다.
서울역에서 남영동으로 걸어가는 도로변에는 그 당시엔 헌책방들이 여러 집이 있었다.
그 헌책방에서 이 시집을 발견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제목이 너무도 강렬했다.
나는 그 당시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죄의식 속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당시의 죄의식은 그저 스무 살의 기괴한 감성이었을 뿐이다.
어제 회사 후배를 만났다.
그 후배는 만나자마자 건네는 첫마디는 이랬다.
“형, 나는 이번에 살아남았어”
그 후배는 이번 연말인사에 집으로 가지 않고 살아남았다.
내년에 어찌될지 모르지만 올해는 운이 좋아서 집으로 가지 않았다고, 후배는 말을 이어갔고, 이 말끝에는 계면쩍어하며 웃었다.
그 후배가 어떨 때 그렇게 웃음짓는질,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후배는 씁쓸한 뒷맛이 있는 일을 겪으면 늘 그렇게 웃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죄의식을 그 후배는 겪고 있는 것이다.
그 후배는 내년 연말에 다시 이런 웃음을 짓고 있던가.
아니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표정으로 헛웃음을 짓고 있던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직장생활은 이렇게 끝이 있는 게임이다.
올해 살아남아 있다고, 영원히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결국 직장인들의 마지막엔 퇴직이 있다.
그 후배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자(者)의 삶’에서 가(家)의 삶’으로 변신한 지금의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거나 강해서 살아남거나, 일단 살아남았다는 자체에 처음엔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연말행사를 몇 번을 하다가 보니, 그때마다 불안에 떨고 있는 스스로 모습에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형은 어찌됐던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잖아.
비유하자면, 형은 독립변수이고, 나는 종속변수야.
외부변수에 내 생활이 왔다 갔다 하는 거지.”
후배는 살벌한 정글 같은 조직에서 25년 반평생을 잘 버텨온 입지적인 인물이다.
과장 시절엔 열정이 넘쳤고, 차장 부장 시절엔 매사에 자신만만했다.
그 당시에 상사인 내게도 ‘이건 아니잖아요’ 하면서 싸가지 없다고 느껴질 만큼 대들었던 친구였다.
그런 그 후배마저 이젠 지쳐가고 있었다.
지쳐가는 후배는 몇 칠이 지나면 나이 오십이 된다.
그가 회사라는 조직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서 지친 건만은 아니다.
그 친구 자체가 가진 원인 때문만이 아니다.
그 친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팍팍하게 변했던 거다.
이미 팬데믹 이후에 이 사회의 생존방식은 예전과는 다르다.
그런데 회사는 그 변화된 사회에서 터져가면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고 있다.
대형마트의 탄생은 도시에 사는 4인의 핵가족을 주요 고객으로 시작했다.
20여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서서히 정정에 치달았다.
그때부터 가구의 형태가 1~2인 가구로 급격하게 분화되었다.
1~2인 가구는 굳이 대형마트까지 와서 대단위 구매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미 그때부터 대형마트의 고객은 축소되고, 매출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영업일수 단축이라는 규제를 가해졌고, 급기야 팬데믹에 의해서 오프라인 쇼핑이 비대면 온라인 쇼핑으로 급격하게 전환되면서,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이젠 생존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자본잠식이 일어난 회사에서 직원이 버텨내는 것은 쉽지 않다.
직원은 성장하는 회사에서도 버티는 것이 쉽지 않는데, 쇠퇴하는 회사에서 직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옥이다.
후배는 자기 얘기를 하다가, 내 동기 얘기를 꺼냈다.
그 동기는 아직도 회사에서 담당으로 강등당하고도 버티고 있다.
“ 00형은 직원으로 있지만 조직에 없는 듯 살아가고 있어요”
동기는 점포에서 직책도 없이, 그냥 일반담당으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 동기는 지금 월급이 많이 깎였다고 한다.
보통 회사의 임금테이블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직책수당이 없어지고, 매년 인사고과 D을 맞아 호봉이 내려가면, 받은 월급은 깎여가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보통 직급이 같은 부장이더라도 점장급 부장과 일반 담당하는 부장을 비교하면 둘의 차이가 거의 절반 수준에 이르게 된다.
“형, 저는 00형이 있는 점포에는 안가요.
그 점포에 갈 일이 있어도 일부러 피해요.
“00형이 저를 불편해하고, 저도 그 형을 보는 것이 불편해요”
그 후배는 예전에 내 동기와 ‘같은 팀’에서 같이 근무했었다.
그때에 내 동기가 팀장이었고, 후배가 팀원이었다.
두 사람은 주말에 가족끼리 같이 여행갈 정도 친했다.
그때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더 끈끈했었다.
그런데 후배가 진급을 빨리 하면서, 몇 년 전에 동기보다 직급에서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상하관계가 바뀌는 역전이 일어났다.
여기에 동기는 4년 전에 일반담당으로 좌천되었고, 후배는 그 해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지금은 서로 연락을 끓고 지낸다고 한다.
이젠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자체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이라, 연락도 못한다고 했다.
오히려 서로간에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동기 얘기 이후에 한 1시간 정도 회사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후배와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 복잡한 머릿속에서 떠오른 시가 바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집에 도착에서 책장의 구석진 곳에 꽂혀있는 그 시집을 꺼내서, 다시 시를 읽어보았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분에 나는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회사.
더 나아가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사회.
이 사회는 강한 자들만이 살아나는 거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이 물음에 나의 대답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살아남는 쪽은 모르지만 희생하는 쪽은 분명하다, 라고 덧붙일 것이다.
희생 자는 늘 약하고 절박한 사람들이었다.
약하고 절박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곳은 바로 회사이고 사회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회사를 견디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규하듯 말한다.
자기는 사원증도 그 속의 사원번호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일 해왔다고 말한다
자기는 부속품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에 인간적 존중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자기는 그저 사람이라는 직원으로, 직원으로서 사회인으로 살고 싶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절규하듯 말한다.
회사가 점점 지옥으로 변해가지 않기 바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어린 양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이다.
그분의 탄생 후 2,02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 이 세상은, 그분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구원하겠다는 약속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모르겠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구원은 멀리 있고, 이 말만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귓가에 흐르고 있다.
[출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부동산 스터디') | 작성자 정스토리
자본가의 삶으로 나아가냐 못하느냐가 이번 생의 행불을 가르는 시대다. 어떻게든 '가'의 삶으로 가야 한다.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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