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문체가 아름다운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지런한 글 따위야 단련하면 쓸 수 있다. 문장도 노동이고 운동이니까. 그러나 진심이 담긴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자기 자신이 진심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성은 진정성과 함께 가는 법이며, 정성과 진정성을 함께 담기 위해서는 필자가 먼저 그런 사람이 돼야 한다. 공감할 수 있는 글이란 예쁜 글이라기보단 진심이 우러나오는 글이라고 보는 나에게는 50대 중반에 30년 다닌 은행을 그만뒀다는 아래 익명의 필자가 쓴 글은 좋은 글이다. 일독 바란다.
이 필자가 힘을 내어 더 나은 내일을 마주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이 필자의 닉네임은 '봄이 있기나 한 건가'인데, 단언컨대 그에게도 다시 봄이 도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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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이 날 것 같다. 가끔씩.
50대 중반,
요즘 멀쩡하게 잘 지내다가도
가족들이 말을 툭. 툭. 함부로 내뱉는 소리에
분노가 화산 폭발하듯 하네요.
10대.. 열심히 공부해서 은행 들어갔고,
20대, 직장 다니며 노량진 입시학원 다니며 공부했죠.
3수에도 불구하고 야간대에 낙방하여 명지전문대
세무회계과 합격 후
낮에는 은행일, 밤에는 야간대 다녔습니다.
식구들 중에 오로지 직장인은
나 하나, 부모님 모두 아무것도 안 하시고 형제들도 막노동 다니는 찢어지게 가난한 과거의 청춘.
생활비 8년 동안 월급 전부 다 드리고,
난 보너스 받는 것으로 야간대 등록금. 용돈 쓰면서
변변한 옷 한 벌 못 사 입은 채 20대를 원망하며
지낸 청춘.
그리고 28살에 5살 위인 고등학교 교사와 중매결혼했죠. 사랑 ..그런 거 모릅니다.
그냥, 현실 도피였죠.
알고 봤더니 사립고에서 지인의 백으로 들어간 사람,
늘 쌍욕을 입에 달고 살며, 방과 후에는 온갖 인터넷 고스톱과
바둑으로 시간을 보내는 일상들.
보수적인 꼰대형의
남편과는 하루도 조용할 일 없이 다투고,
아들. 딸을 키우며 내 인생을 갈아 넣었죠.
오로지 아이들만큼은 공부 잘 시키고 가난하게 키우지
않게 하려고.. 목숨 걸고 키웠죠
낮에는 직장,
저녁에는 애들 교육..
그런데 큰애는 고등학교 때 외고 준비 후 실패한 뒤 수도권대 들어갔는데 그마저도 중퇴하고 외국 호주 나가서 돈 벌고 놀다가 한국 들어왔고, 무직으로 지내다가 최근 보험을 했습니다.
코노 나로 수입도 막혔죠.
딸애는 서울 안 중. 하위 대학의 영문과 졸업 후 미국에서 1년 수업도 듣고, 한국 와서 아르바이트하고..
사범대라서 교사된다고 임용 준비하는데
자기가 알아서 직장 다니면서 틈틈이 준비하지만
두 번 떨어졌네요.
그런데 딸애 성격이 보통이 아니죠.
아니 거의 미친 애 수준이죠
수틀리면 가족. 부모한테 욕하고. 가구를 부수고..
그거 다 받아주려니까 내가 화병이 생기겠네요.
직장에서
점심시간에는 빨리 밥 먹고
인근 마트 가서 장 봅니다
내일 반찬 준비하느라
오늘,
출근을 안 했습니다.
30년 가까이 다닌 직장에 무단결근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직원이 묻자,
무단결근 처리하고 내일 사직서 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그동안 30년간 쌓였던 게
왜 하필 오늘 터졌는지 모르겠네요.
그동안 애들 둘 다 키우면서 그 흔한 케이크 한 조각, 원두커피 한잔 사 먹은 적 없고, 변변한 옷 한 벌 사본적 없이
중고 제품 사 입고 다니며 최선을 다한 인생입니다.
30년간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아끼고 절약하고 모은 돈 5억 원 현금과
현재 아파트를 합쳐서 재개발 입주권을 사서
내년 가을 입주를 앞두고 있습니다.
남편은 교직 정년퇴임 2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오늘, 코로나19 접종 2차 맞고 왔는데
쓸데없이 잔소리를 합니다.
자기한테 스타벅스 기프티콘이 있어서 사 왔답니다.
초코 조각 케이크와 아이스커피!
난 조금 먹다 남겼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화냅니다.
왜 성의 없이 먹냐고..
그래서 소리 질렀습니다.
난 초콜릿 싫어해!
초코케이크도 싫어해!
왜 내게 존중의 의사도 없이 케이크를 먹으라고
강요하느냐고.. 소리 질러 버리고ᆢ 결근을 했습니다.
사실,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말다툼하다 보니 결과가 무섭게 커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오전 근무한다고 나갔던 아들이
집에 와서는 짜증을 냅니다.
밖에서 문 열다가 안 열리니까,
안에서 열어줬는데
마침 그때 내가 거칠게 열었던 거 같습니다.
아들 왈..
왜 성질이야?
내게 말하고는 자기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
가만히 3초간 생각하다가 ..
참기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안 가기로 했습니다.
직장을 좀 더 다녀야 하는 입장인데
오늘 모든 걸 다 때려치워 버렸네요.
입주권도 전매하려고 부동산에 내놨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네요.
삶이 구질구질합니다.
(이 글의 출처는 부동산스터디카페다. 이 분에게 많은 위로와 응원글이 이어졌는데, 더 많은 위로와 응원글이 이어지길 바란다. 개인적이면서 보편적인 무언가를 이 분은 전달해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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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절대로 구질구질하지 않다.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그저 열심히 살아냈을 뿐이다. 앞으로의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다만, 마음가짐만 달리하길 바란다. 태도가 당신을 이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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