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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위한 당신의 이야기

가난은 사람을 잘근잘근 갉아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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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러군데 회자돼 많은 귀감을 주었던 회고담이다.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던 아버지에게 도박의 무서움을 배웠던 일, 사업에 망한 아버지가 경마에 빠져 나락으로 치닫는 과정을 지켜본 일 등이 덤덤하게 서술돼 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가난의 지독함을 배운다. 우리가 부유해지려는 것은 존엄을 사수하기 위해서이기도 함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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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썰이 좀 길다만,

시간이 남기도 하고 그냥 왠지 남겨놓고 싶어서 쓴다.

수십년 전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당시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로 청소년 선도 업무를 하셨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경찰신문(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같은 곳에 칼럼도 기고하셨다.

무엇에 대한 칼럼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기자증 같은 것을 발급받아 사용하셨고,

그 이유로 당시 미군 부대 출입이 가능했는데,

어느 날 저녁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내게 미제 스테이크를 사준다고 미군 부대에 데리고 가셨다.

그때는 스테이크 자체도 흔치 않을 때였다.

두꺼운 소고기를 처음 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허겁지겁 그것을 먹어치웠다.

그렇게 스테이크를 다 먹고 나자 아버지께서는 나를 식당 입구에 있던 슬롯머신으로 데리고 가 그것을 보여주셨다.

그러면서 돈 만원을 쥐어주며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다.

아버지 역시 방법은 전혀 모르시는 듯했다.

나는 그냥 버튼을 눌렀다.

레버를 당기고 뭐가 맞는지도 모르는 채 몇 십분을 보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돈의 두 배인 2만원이 내 손에 있었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아버지께 돈 땄으니 이제 그만 가자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리셨다.

시간이 넉넉하니 더 해보라고 하셨고

나는 다시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진 것 없이 나는 모두 다 잃었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집에 가자고 하셨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내게 흐뭇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도박이란 다 이런거야. 도박으로 돈을 벌 수는 없단다. 지금 이 경험을 잊지 말거라."

나는 그제서야 얼마전 학교에서 500원짜리 판치기 따위 노름을 하다 선생님께 걸려 엄마를 학교에 모시고 간 기억이 났다.

아버지는 모르시는 줄 알았다.

엄마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구나.

그래.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 이후로 도박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더라.

나도 모르게 그 일이 내 무의식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또 10여년이 더 흘렀다.

승승장구 할 것 같던 아버지 회사는 어느날 부도가 났다.

IMF 때도 끄떡없던 회사는 고작 한 명의 사기꾼에게 쉽게 무릎을 꿇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했다.

우리집은 진짜 부자는 아니었는지 곧바로 기울더라.

당시 왹구서 유학하던 나는 급히 돌아와야 했고, 그때부터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살아야 했다.

아버지는 매일 여기저기 뛰어다니셨다.

그너라 누구도 망한 회사 사장 입을 믿어주지 않았다.

재기할 기회 같은 것은 결국 제공받을 수 없었다.

나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마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이리라.

상대적으로 유복한 환경서 자라서인지 돈 개념도 별로 없었다.

왠지 금방 다시 예전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몇 년이 그렇게 또 흘러

나는 깨달았다.

어느날 우연히 모든 의욕을 잃고 망가진 아버지 책상에 쌓여있던 수북한 경마잡지를 보고 알아버렸다.

돈이나 가난 따위 것들이 어떻게 사람을 파괴시키는지를.

수십년 전 미군부대에서 내게 도박은 얼마나 멍청하고 무의미한 짓인지 몸소 깨닫게 했던 아버지는 그때 없었다.

내가 만들어 준 신용카드로 과천에서 현금서비스 600만원을 인출해 모두 날리고 와선 변명하기 급급한 불쌍한 영혼만이 있었을 뿐.

물질적 풍요로움은 욕심을 통제하고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고 철학적인 사유도 가능케 했으나,

그것이 턱없이 모자랄 때는 욕심에 복종하게 만든다.

현실을 왝고하고 종국엔 희망마저 앗아가 버린다.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가난 그 자체는 두렵지 않았지만,

가난은 사람을 갉아먹는다는 진실을.

그것도 가장 밝았던 부분부터 골라서.

우습게도 스테이크를 먹던 유년시절보다,

아버지의 경마잡지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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