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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에 대한 단상

회사에 절대로 아파트 샀다고 말하면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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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내가 잘 나간다는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시기와 질투, 열등의식에 찌든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가 대부분이어서다.

금세 험담이 퍼져나갈 것이다.

꼭 무주택자만 그러는 게 아니다.

유주택자도 마찬가지다.

입지가 딸리면

반드시 당신을 시기한다.

그런 것이다.

인간은 본디 가난의 마음을 달고 산다.

그것을 얼마나 덜어내고 걸러내느냐가

당신의 앞길을 좌우할 것이다.

이전에 쓴 포스팅의

일부 대목을 다시 소개한다.

곱씹으면 꽤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불편하면 그냥 가시라.

가난의 세습은 주로 부모의 습성을 물려받은 탓이 크지만 부모랑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터득한 것일 때도 많다. 우리는 그것을 짚어봐야 한다.

우선 가난한 사람은 돈 받는 것 이상으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초과 근무한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고용주나 상사가 그런 요구를 하면 자기를 더 부려먹으려는 개수작일 뿐이라 여긴다.

​돈 있는 사람은 전부 그 놈이 그놈이라 지레짐작하고 더 열심히 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저 멸시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게 전부다.

실제로 고용주들이 더 헌신적으로 일해줄 직원을 곁에 두고 싶어한다는 것을, 이를 통해 기회를 주려고 한다는 것은 눈꼽만큼도 상상하지 못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가난을 만든다.

그리고 제 분수를 모르며 아무 일이나 안 하려 한다. 예전에 받았던 최대 액수 이하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정말 능력 없고 돈 없고 현실이 어려우면 아무도 찾지 않는 일이라도 찾아 막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 일 몇 년간 빡세게 해서 월급 대부분을 저축해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한데 그런 행동일랑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비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며 버는 족족 써버린다. 과거 산업화 세대들은 어떠했나. 일자리가 너무도 부족해 아무 일이나 일단 닥치는 대로 했다. 일을 안 하면 굶어죽으니 사생결단으로 일한 것이다. 그러다 기회를 잡고 빈민에서 서민으로 서민에서 중산층으로, 그중 일부는 중상층, 부자로 도약했다.

그러나 지금 수많은 빈민들은? 몸에 편한 일을 찾으려고만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해도 굶어죽지 않는 시대라는 데 안주하면서 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미래를 대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을 저 멀리 밀쳐둔다. 그저 흥청망청 써댄다.

서울역 지하철 노숙인 중에 돈이 생기는 족족 술이니 고기를 사서 써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돈을 꼬깃꼬깃 아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내키는 대로 그냥 써버리고 만다. 비상금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것이다.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여자들 부르는 유흥업소에서 써버리기 일쑤인 이런 사람들의 현실을 일컫어 사회의 쓰레기라고 하는 것이다(그 현실이 궁금한데 직접 관찰해보기 꺼려지만 유튜브에서라도 노숙자 관련 영상들을 살펴보라.).

그러면서도 경험자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제 개똥철학을 신봉하고 남의 충고는 귀담아듣지 않는다. 대체로 이들은 현실이 이 모양인 원인이 자기한테 있음을 완강히 부정한다. 그리고 세상 탓을 하고, 한 번도 면전에서 대해본 적 없는 부자들을 욕한다.

자기가 가난한 것은 못 배워서, 게을러서가 아니라 있는 놈들이 내가 가질 돈을 뺏아갔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깨뜨리지 않은 채 강력한 흑백 논리에 따라 살아간다. 자기가 잘못됐다는 것은 추호도 인정하지 않으니 불안감도 별로 없다.

물론 모든 가난과 가난한 자들을 이렇게 치부해선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가족 중에 정말 아픈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살리려고 병원비를 쏟아붓다보니 가난해진 경우, 질병과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 혼자가 돼버린 독거노인의 경우 등등 정말로 어려운 조건 속에 놓인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의 가난은 어떻게든 사회가 책임을 지고 보듬어줘야 한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 택한 가난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분명히 제 의지로 돌파해낼 수 있는 가난인데 불구하고 가난의 자리에 멈춰서기로 한 태만의 존재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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