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시민단체 할 거 없이 정말 한심하다고 여겨지는 행태는 몇 십년 월급을 안 쓰고 모아야 집을 산다고 주장할 때다. 집값이 오를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바보 같은 이야기들인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경실련이라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줄임말이다. 경제 정의는 고사하고 별 사회적 효용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 툴툴이 단체가 23일 기자회견을 했다. 내용은 집값 타령이다. 들어보자.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아파트값이 2배 가까이 올라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해도 집을 사는 데 25년이 걸린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왜곡된 부동산 통계부터 전면 개혁해 집값 상승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정부의 실정을 비판한 것은 올바른 일이겠으나 그 비판의 논거가 어리석다. 돈 안 쓰고 모으기만 해도 집 사는 데 25년이 걸린다라. 내 집 장만이 얼마나 힘든 현실인지를 과장하기 위한 레토릭에 불과한데, 이제는 제발 좀 이런 바보 같은 선동을 그치길 바란다.
생각해보라. 극소수 현금 부자들을 제외하고 그 누가 집을 현금 뭉치로 사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내 집 장만이란 본디 레버리지를 일으켜 하는 일이다. 레버리지가 뭔가. 지렛대 효과다. 미래의 나의 소득을 현재로 앞당겨서는 내 집 장만의 지렛대로 쓰는 것이다.
레버리지를 실행해주는 기관은 은행 등 금융기관. 내가 매달 주택담보대출 원금과 이자를 충실히 납부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경우 대출을 승인, 이를 지렛대 삼아 집을 살 수 있게 해준다. 이건 아주 기초적인 금융 원리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채택한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는 이런 식으로 국민의 내 집 장만을 장려하고 있다. 수십년 월급 안 쓰고 모아야 집 살 수 있다는 경실련의 수사가 그저 부정의 감정에 호소하는 철 없는 선동으로 들리는 이유다.
경실련은 차라리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옥죈 주택 대출 규제를 풀어달라고 했어야 옳다. 여력이 되는 국민이라면 얼마든지 금융기관에서 레버리지를 일으켜 내 집을 장만할 수 있게 말이다.
한데 현실은 어떠한가. 정부는 LTV, DTI 등을 꽁꽁 묶어버린 탓에 레버리지를 쓸 수 있는 여력을 강제로 제한해버렸다. 9억원 아파트는 아파트 시세의 40%, 9억원 이상 시세부터는 20%만 대출을 해주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심지어 전 정부에서 70%까지 해줬던 것도 세계 기준으로는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예컨대 A씨가 12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려고 한다고 하자. 현재 은행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 대출액은 얼마인가. KB시세의 9억원 이하까지는 40%까지 LTV가 적용되므로, 3억 6000만원의 대출이 실행되고, 9억원 이상부터는 20%만 가능하므로 3억원의 20%인 6000만원의 대출이 더해진다.
상환 여력에 문제가 없다면 합해서 4억 2000만원의 대출을 풀로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나머지 7억 8000만원은 신용대출 등을 동원해 따로 마련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서민, 중산층할 것 없이 내 집 장만, 더 나은 집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길은 더더욱 멀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레임덕 끝자락에 놓인 정부는 이제야 표심을 잡는답시고 6억원 이하 저가 주택 대출 규제만 완화시키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집값 안정은 고사하고 저가 주택마저 일제히 9억원으로 수렴시키는 집값 폭등의 평등이다.
경실련은 이런 현실을 면밀히 꼬집었어야 함이 옳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임대차 악법 원천 무효화, 보유세 감면, 취등록세 절감, 전월세신고법 등 최악의 사유재산권 침해 정책에 대해 말이다. 그러나 25년 동안 월급을 통으로 모아도 집 못사는 현실이라며 한탄만 하고 있으니, 그래서 되겠는가. 한탄만 한게 아니라고?
"정부가 지금이라도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왜곡된 부동산 통계부터 전면 개혁해 집값 상승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금에서 무슨 쓸모가 있나. 우선 순위를 가려 정말 필요한 지적을 했으면 좋겠다. 그럴 용기도, 의지도 없으면 차라리 시민단체 간판부터 내리고.
적어도 대한민국에 있는 시민단체의 상당수는 더 이상 시민을 위한 단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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