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가격을 결정한다'
최근 아파트 시장엔 이런 인식이 만연하다.
아파트 네이밍(naming·이름짓기)에 관심이 커지는 이유다.
대형 건설사들은 '프리미엄' 브랜드를 속속 내놓고 있고,
해당 지역의 특색을 반영하는 '펫네임(petname)' 등으로 경쟁에 사활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몹시 까다롭다.
아파트를 선택할 때 입지나 마감재와 같은 객관적인 요소는 물론,
브랜드 가치와 같은 감성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합리적 소비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아파트 시장에 브랜드가 처음 생겨난 건 1990년대 후반.
그전까지 아파트 이름은 평범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처럼 지역명과 건설사 이름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1998년 아파트 분양가가 자율화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아파트 사업에 진출했다.
브랜드 경쟁도 불붙은 건 이때부터라고 보면 된다.
'브랜드 아파트' 개념을 맨 처음 도입한 건설사는 어디일까?
롯데건설이다.
1999년 '롯데캐슬'을 출시해 국내 주택업계 최초로 브랜드 아파트 시대를 열어젖혔다.
'캐슬(성)'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유럽 성을 연상시키는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아파트로 각광받았다.
성이 갖고 있는 웅장한 이미지를 아파트에 적용한 것부터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했다.
설계부터 외관, 조경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으니.
롯데건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16년에는 브랜드 론칭 17년 만에 롯데캐슬 브랜드 로고(BI)와 문주를 개편하는데,
산뜻하고 젊은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이 새롭게 바뀐 BI와 디자인은 그해 강원도 원주시에 분양한 '원주 롯데캐슬 더 퍼스트2차'에 적용됐다.
요새 롯데건설은 초고령 사회 진입에도 대비 중이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에 집중하는 게 한 예다.
대림산업과 삼성물산도 롯데건설과 거의 동시에 아파트 브랜드를 론칭했다.
대림산업은 2000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의 아파트 분양을 앞두고 'e-편한세상'을 처음 선보였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같은 해 아파트 브랜드 BI(Brand Identity) 선포식을 갖고 '래미안'을 발표했다.
당시 래미안은 고급 아파트의 전형이었다.
"저기, 저 집(래미안)에 살아요"라는 TV광고 문구가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면서 비판도 적잖았다.
21세기 벽두부터 건설사들은 앞다퉈 아파트 네이밍 경쟁에 목숨을 건다.
정리해보자면,
롯데건설-롯데캐슬,
현대건설-힐스테이트
대우건설-푸르지오
GS건설-자이
SK건설-SK VIEW
포스코건설-더샵
한화건설-포레나
두산건설-위브
금호건설-리첸시아
호반건설-베르디움
코오롱건설-코오롱하늘채,
태영건설-데시앙
한라건설-한라비발디
반도건설-유보라
등이 있다.
아파트 브랜드가 강세를 띠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선 대형 건설사 프리미엄 브랜드가 환영받는다.
아파트 브랜드가 앞으로의 집값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집중돼 있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는 브랜드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건설사 간 수주전이 치열해지자,
2개 이상의 브랜드가 합작해 시공하는 컨소시엄 아파트를 보는 것도 일상적 풍경이 됐다.
마래푸, 센트라스, 텐즈힐, 디에이치자이 개포, 선정뉴타운 아이파크 위브, 고덕 아르테온, 녹번역 e-편한세상 캐슬, 산성역 포레스티아, 과천 위버필드, 어바인퍼스트 등
많고도 많다.
물론 아파트 브랜드 마케팅이 매번 호황을 이루진 않았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한동안 주춤했데,
2014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재상승하자 다시금 활기를 띤다.
'아크로'(대림산업), '푸르지오 써밋'(대우건설), '디에이치'(현대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이때부터 속속 발표됐다. 이른바 고급화 전략이다.
이 시기 특히나 대림산업은 주목할 만하다.
주택 경기가 냉각기이던 2013년 당시 파격적인 분양가를 내세우며 '아크로'라는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알려져 있는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가 그 주인공이다.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아크로'라는 브랜드는 이미 20년 전인 1998년부터 존재했다.
서울 도곡동 주상복합·오피스텔 브랜드인 '대림아크로빌'이 그 주인공이다.
'아크로(ACRO)'는 '가장 높은, 넓은'이라는 의미인데,
국내 최초의 초고층, 최고급 주상복합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다 아크로빌의 '빌'은 빠지게 된다.
'아크로'에 단지 입지 특성을 붙이는 방식으로 네이밍이 다변화한다.
아크로리버파크, 아크로리버뷰, 아크로리버하임, 아크로서울포레스트가 그렇게 탄생했다.
'푸르지오(PRUGIO)'도 살펴보자.
깨끗함과 싱그러움, 산뜻함을 표현하는 '푸르다'라는 순우리말에 대지, 공간을 뜻하는 'GEO'를 결합했다.
자연과 환경, 인간이 하나가 되는 차원 높은 생활공간을 의미하는데,
푸르지오써밋 브랜드를 처음 적용한 곳은 2014년 분양한 서울 서초동 '서초푸르지오써밋(서초삼호1차아파트 재건축)'이이었다.
대우건설도 '써밋(SUMMIT)'이라는 하이엔드 브랜드로 후광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써밋은 정상, 꼭대기라는 뜻이니 기존 브랜드와의 통일성을 고려해 푸르지오에 '써밋'을 붙이는 것으로 브랜드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과천주공7-1단지'를 재건축한 '과천 센트럴파크 푸르지오써밋'이 대표적인 예겠다.
현대건설도 가만있을 리 없다.
현대건설은 기존 힐스테이트와 별도로 2015년 프리미엄 브랜드 '디에이치(THE H)'를 선보였다.
디에이치의 'THE'는 단 하나뿐인 프리미엄 라이프를 의미하고, 'H'는 현대건설의 영문 HYUNDAI의 머리글자이자 'HIGH-END HOUSING(고급 주거)' 'HIGH LIVING SOCIETY(상류 생활 사회)'를 뜻한다.
이 '디에이치' 브랜드는 2015년 4월 삼호가든 3차 재건축 수주전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다수의 강남권 재건축 사업장 시공권을 확보해
삼호가든 3차에 디에이치아너힐스(개포 주공 3단지 재건축), 방배5구역, 반포주공 1·2·4주구(반포1단지), 대치쌍용2차 등이 '디에이치' 아파트로 속속 지어진다.
한화건설은 최고급 주상복합 단지에 '갤러리아'라는 명칭을 붙이고 있다.
갤러리아는 계열사인 갤러리아백화점의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서울 성수동 갤러리아포레와 잠실동 갤러리아팰리스가 있다.
특히 갤러리아포레는 성수동 일대를 부촌으로 탈바꿈시킨 주역 아파트로 유명하다.
서울숲과 한강이 가까이 있고 지드래곤, 김수현 등 인기 연예인들이 살면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두산건설은 두산위브와 함께 하이엔드 브랜드로는 '더 제니스(THE ZENITH)'를 사용 중이다.
제니스는 영어로 '정점, 절정'을 뜻한다.
이 브랜드는 주로 지방 도시에 분포해 있다. 부산 해운대·동백, 대구 수성, 일산, 포항 장성, 김해, 울산 등에 있으며 단지 이름은 지역명 뒤에 '두산위브더제니스'를 붙이는 식이다.
분양가를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마감재나 단지 규모를 보고 고급 사양 아파트에 '더제니스'를 붙인다.
반도건설은 '유보라'라는 브랜드 외 프리미엄 브랜드는 별도로 없다. 건물의 특징을 살려 펫네임을 붙이는 식으로 트렌드에 부응하고 있다.
'유보라'라는 브랜드는 기존 반도건설 브랜드네임인 '보라빌'과의 연속성에서 탄생했다. 또한 '보라'는 반도건설 창립자인 권홍사 회장의 첫째 딸 이름이기도 하다.
호반건설은 2005년 론칭한 아파트 브랜드 '호반베르디움'과 2010년 나온 주상복합 브랜드 '써밋플레이스'로 소비자에게 잘 알려져 있다. 베르디움은 푸른 숲(Vert)과 대지(Imperium)가 합쳐진 말로, 사람과 자연이 숨 쉬는 주거 공간을 의미한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는 건설사들도 있는데,
삼성물산과 GS건설이 그렇다.
두 건설사는 굳이 하이앤드 없이도
간판 브랜드인 '래미안'과 '자이' 브랜드를 지켜가면서 단지별 차별화와 고급화를 꾀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2009년 서울 반포주공 2단지를 재건축하면서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라는 단지명을 붙여 브랜드 인지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후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은 래미안 신반포팰리스, 래미안 신반포리오센터, 래미안 대치팰리스, 래미안 서초에스티지, 개포 래미안 블레스티지, 래미안 루체하임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GS건설은 2002년 론칭한 자이 브랜드로 서울의 랜드마크를 차례로 접수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반포 센트럴자이, 신촌 그랑자이, 목동 파크자이, 서울숲 리버뷰자이, 방배 아트자이 등 지역 특색에 맡는 펫네임을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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