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신도시 얘기까지 나오는 포퓰리즘 정국이지만 이럴 때 1기 신도시에 조명이 집중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죠. 준공 30년차 된구축들은 노후도가 심각해서 어서 새로 지어야 합니다. 리모델링 추진이 요새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도 더는 늦을 수 없다는 절박함의 발로입니다.
이 가운데 대선주자들도 1기 신도시 주민들의 표심을 잡느라 혈안이죠. 1기 신도시 재정비로 주택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입장까지 속속 밝히고 있어요. 안 그래도열기가 뜨거운데 기름을 붓고 있달까요.
1기 신도시가 어떤 곳인지 아는 것은 부린이든, 부동산 전문 투자자든 중요합니다. 부동산 시장을 공부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게 1기 신도시거든요. 복습 좀 해볼까요. 1기 신도시가 지어진 것은 노태우 정부때였어요. 지난 1989년 4월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노태우 정부는 신도시 계획을 발표합니다.
위치는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 부천시 중동,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등 5개 도시. 여기에 총 29만2,000가구를 짓는 대규모 계획이었죠. 이 신도시 사업은 성공적이었습니다. 1985년 69.8%였던 주택 보급률은 1991년 74.2%로 오르게 됐죠. 공급이 늘어나니 집값 상승세는 수그러들고 시장은 안정화되어 갔습니다. 집값 안정화(하락이 아닙니다)의 가장 좋은 방법은 공급 정책이라는 것을 당시 사람들은 마음 깊이 알게 됐지요.
그 단지들이 이제 준공 30년을 넘은 곳들 투성이입니다. 2026년이면 29만2000가구의 100%가 준공 30년이거든요. 신도시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너무 낡았거든요. 가장 문제는 건물 노후도도 노후도이지만 가구당 주차대수가 0.5대도 안되는 경우도 속출한다는 데 있습니다. 요즘 아파트보다 바닥 두께도 얇아 층간 소음에도 취약합니다. 1기 신도시 주민들이 재건축, 리모델링에 사활인 것을 집으로 돈 좀 벌어보겠다는 것으로 매도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현재 1기 신도시 대세는 리모델링입니다. 정부가 워낙 재건축을 틀어막으니 참다 참다 리모델링이라고 하려는 것이죠. 나름 장점이 있어요. 리모델링은 준공 15년만 넘어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움직임은 개별 단지가 아닌, 수십개 단지가 모여 집단 행동에 나서고 있단든 데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해 말 경기도 성남시 분당 19개 시범아파트 7,769가구가 재건축 연합 추진위원회를 결성한 게 대표적이죠. 산본에서는 이달 중으로 총 18개 단지, 1만7,500가구가 참여하는 '산본 공동주택 리모델링연합회'가 출범할 예정이고요. 평촌신도시에서도 지난해 5월 21개 단지가 리모델링연합회를 구성했습니다.
쪽수가 많아지면 추진력도 강해집니다. 추진위원회가 대형화하는 이유는 계획적인 개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정부 등 관계 기관에 더 큰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고요. 고양·성남·부천·안양·군포 등 5개 지자체장들이 나서서 '노후 1기 신도시 활성화 공동 토론회'를 열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던 것을 보십시오. 뭉치지 않으면 이런 압력은 행사하기 힘듭니다.
관건은 용적률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 현재 1기 신도시 평균 용적률은 169~226%입니다. 주거 지역 법정 상한선(300%)보다는 낮습니다. 그러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과밀을 막으려고 만든 '지구단위계획'의 용적률 제한에 걸립니다. 이게 큰 문제죠. 가구 수를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니까요.
대선후보들이 요새 한창 1기 신도시에 눈길을 주는 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면 30만 가구에 육박하는 표심을 덩어리 채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정략적 판단 때문입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어땠습니가.
최근 1기 신도시 용적률을 상향해 1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도 가만히 있지 않지요. 수직 증축에 초점을 맞춘 1기 신도시 리모델링 특별법을 만들겠다는 방침을 내놨습니다. 두 후보 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방면에선 용적률 문제 해소를 해주는 게 올바른 길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규제는 없애야겠지요.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내가 소유하지 않은 단지가 잘 된다면 다른 단지 주민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끌어내리려고 하겠죠. 가난의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가장 열등한 후진성이니까요. 이미 특혜논란이 벌어지는 중이기도 합니다.
하나 기억할 것은 1기 신도시 용적률을 완화하면 전국적 개발 붐으로 이어질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당연한 일이겠고요. 그러나 부수고 지어야 할 것은 어서 새로 지어야 합니다. 애초에 착착 추진해왔다면 벌써부터 논란 시비가 벌어지는 일도 없었을 테지만요. 아무튼 지켜봐야할 일이겠습니다. 대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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