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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자유 자극제

흙수서는 이렇게 마용성 아파트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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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은 글. 저마다 지난 시절을 되새기며 내가 잘 살아왔는지, 나의 자산 형성기는 어땠는지를 반추해보면 좋을 것. 튼튼아빠님 글은 꼬박꼬박 챙겨 읽는데, 부린이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대목은 이 지점. "이 글을 보고 계신 사회초년생이 계시다면 부동산 투자 서적을 최대한 많이 읽으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고, 아울러 폭락론을 외치는 책은 시간과 돈 낭비이니 굳이 돈주고 사지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희망을 잃지 않는 자에게 기회는 오고,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이 결국엔 웃는다. 당신은 웃고 싶은가 울고 싶은가.

<시골 흙수저 마용성 입성기>

필자 튼튼 아빠

20대의 끝자락인 29살에 첫 내집마련을 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당시 제대하고 복학생이던 때부터 사귀던 아가씨가 있었는데요.

취업하고 1년 반 정도 지난 시점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취업도 했고 사회생활도 조금씩 적응되고 있으니

결혼을 먼저하면 더 빨리 자리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어차피 결혼할 건데 연애 기간만 계속 길어지는게 답은 아니라 생각했었죠.

그러게 사귄지 약 3년여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아홉수에 결혼하면 안좋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그냥 무시하고 스물아홉살의 나이에 결혼에 골인합니다. ^^

모든 결혼을 앞두신 예비신혼부부의 가장 큰 고민은 '어디에 살 것인가?'일텐데요.

그래도 신혼인데 그당시 살고 있던 철판으로 된 무허가 옥탑방에 살 순 없어서

그래도 좀 집 같이 생긴 집을 좀 알아보기 시작했는데요.

무슨 객기가 들었는지 다세대, 다가구, 원룸, 빌라 이런 집들 다 제쳐두고

퇴근할 때마다 아파트를 보러 다녔습니다.

그때만 해도 스레트집, 토굴집, 반지하, 옥탑방 같은데만 살아봤었고

다세대, 빌라와 같이 벽돌로 지어진 좋은 집들조차도 서울에선 한번도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분수에 맞지 않게(?) 아파트로 퀀텀 점프~ 하고자 한 것이죠.

이건 마치 아반떼 타다가 소나타, 그랜저 다 뛰어넘고 갑자기 제네시스로 갈아탄 격일까요? ^^

인생에 한 번 뿐인 결혼이고 평생 함께 살 사람인데

이왕 사는거 좋은 곳에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저야 뭐 서울에서 가장 열악한 주거 환경을 다 겼어봤던 터라 어떤 집에 살아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아내가 환경이 나쁜 곳에 사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죠.

(캬 멋진 남자임^^)

그래서 처음부터 빌라, 다세대 등은 건너 뛰고 바로 아파트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어차피 서울엔 연고가 없던지라

회사 출퇴근 가까운 곳에서부터 점점 먼 곳까지

서울 구석구석 이곳저곳을 이 잡듯 샅샅히 뒤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당연히 전월세 물건을 보러다녔죠.

철판 옥탑방 월세 살면서 몇 억씩 하는 집을 산다는 건 꿈도 못 꾸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곳들을 살펴보다가 성북구 정도면 거리나 출퇴근 시간이 적당해보였습니다만

성북구 아파트는 전세 대출을 받는다 해도 쉽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출퇴근 거리가 좀 멀어지더라도 강북구까지 보러가게 됩니다.

그런데 강북구까지 가도 저렴한 전세는 없어서 도봉구, 노원구라도 가봐야 하나? 거기도 안되면 의정부라도 가야 하나? 하다가

어쩌다 보니 북한산 가까운 대단지 아파트를 찾아가게 됩니다.

정말 높은 곳에 있었고 그 당시는 전철역에서도 멀어 교통이 불편했습니다.

(지금은 전철역 등 교통 개선됨)

그렇게 그 아파트 주상가 아무 부동산이나 들어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부동산 아저씨가 지금 마침 볼 수 있는 집이 있다며 보고 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예정에도 없던 남의 집 구경을 했는데

와 이건 정말 제가 살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24평이라는데

방 3개 짜리 집에 화장실이 2개나 있다는게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푸세식 화장실에 익숙했던 당시

안방에 별도 화장실이 있다는건 정말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집 안에 주방도 있고 싱크대도 있고 따뜻한 물도 나오고

와 정말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구나!!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처음보는 너무너무 멋진 으리으리한 아파트를 보고 나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부동산 아저씨가 전세 8,000 이라고 합니다.

예산을 초과하는 금액에 고민을 하고 있으니

방 3개, 화장실 2개, 계단식 아파트에 1억도 안되는 가격은

서울 시내 어딜 가도 찾을 수 없을 거라며

초중학교가 붙어 있고 공기도 좋고 5천세대 대단지가 어쩌고 등등

침을 튀겨가며 지금 계약금 얼마라도 걸어놓고 가라 합니다ㅋㅋㅋ (영업 잘하심)

집은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생각 좀 해볼게요.' 하고 문을 나서려는데

부동산 전면 유리에 전세 얼마 매매 얼마 이렇게 써있는 것들이 눈에 확 들어왔는데요.

'매매, 로얄동 로얄층 18,000만' 이라 써있는 겁니다.

당시 살고 있던 철판옥탑방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그 아파트가 너무 좋고 마음에 들었던터라 다시 부동산에 들어가서 매매는 돈주고 사는 거죠? 라고 물어보니

부동산 아저씨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돈 모자라면 직장인 생애최초 대출이 가능하니까

바로 옆의 은행장과 친하다며 바로 소개해준다고 지금 당장 가계약금이라도 걸어놓고 가라 합니다ㅋㅋㅋ (진짜 영업 잘하심)

너무 마음에 들었던 꿈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집이었지만

전세 8천도 비싼데...

매매 1.8억이라니 당시 신입 연봉을 한 푼 안쓰고 몇 년을 모아도 살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라 어떤 결정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순 없습니다.

다음날 회사 출근해서 점심시간에 약속있다고 빠져 나온 후

종각역 길건너 지하 영풍문고에 가서

부동산 코너에 있던 책을 10여 권 정도를 막 집어들어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직장동료들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먼저 들어와 책상 밑에 잘 숨겨놨다가

그날은 아파트 보러 안 다니고

철판옥탑방 집으로 바로 귀가해 밤새서 그 10권을 모조리 다 읽어버렸습니다.

이때부터 부동산 투자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책읽기와 현장 답사 등을 생활화하며 게을리하지 않았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모두 읽고 근처 은행에 들러

매매가 1.8억에 약 1.2억까지도 대출이 나온다는 걸 확인했고

나머지 금액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생애최초 직장인 대출의 금리는 5.2%로 기억하는데 다른 일반 대출금리보다 훨씬 더 저렴한 금리의 상품으로 인기가 많았죠.

당시 읽었던 부동산 도서에 써있는대로 맞벌이하면서 매월 갚으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몇군데 부동산을 들러 여러 매매 물건을 보고는

단지 내에서 제일 좋은 로얄동 로얄층 올수리 물건을

그냥 확 질러버리고 맙니다.

은행대출에 회사대출까지 그야말로 풀로 다 땡긴 요즘 말하는 영끌 매수를 한 셈인데

회사대출 장점은 금리는 초저금리라 좋았습니다만

월급에서 원금을 까다보니 매월 실수령 월급이 줄어드는 단점도 있더라고요 ㅠㅠ

어쨌든 그게 2005년 8월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철판옥탑방 월세 살던 20대의 마지막 29살에 인서울 대단지 아파트를 등기치고 집주인이 됩니다. 우와~~~~ ㅋㅋㅋㅋ

20살에 홀로 상경해서

29살이 될 때까지 20대의 대부분의 기간을

화재로 불타 죽을 뻔한 산꼭대기 스레트집, 연탄가스로 죽을뻔한 창문없는 토굴집, 매연이 쏟아져 들어오는 버섯고시원, 여름에 푹푹찌고 겨울에 꽁꽁어는 철판옥탑방을 비롯해

서울에서 가장 열악한 곳만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너무 고생을 많이 했던 기억들이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한순간에 떠올랐습니다.

(군대 있을 때가 먹는 음식이나 잠자리가 제일 좋았네요.)

이왕 마련해야할 신혼집이고

또 사랑하는 아내를 모셔야할(?) 공간이기도 하고

허름한 곳에서 아내를 고생시키기도 싫었고

게다가 집주인이 되면 더 이상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고

더 이상 집주인 눈치도 안봐도 되니

전월세 보러 갔다가 매매를 하게된 이유중 하나가 되었네요.

재래식 공동화장실과 씻을 곳을 마당 한켠의 수도꼭지를 공동으로 쓰던 다 썩은 스레트집에서

빨래하는데 물을 너무 많이 쓴다고 구박하던 안채의 주인 할머니 모습도 떠올랐고,

삼선교 어느 부동산에서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0만원짜리 방 있냐고 물었을때

무시와 경멸하는 태도와 목소리로, '허참, 그 돈으로 미아리나 가보던가' 라며

쫒겨나듯 되돌아 나와야 했던 부동산 아저씨도 떠올랐고,

정말 숱하게 겪어야 했던 말못할 수많은 고생들과

몇번이나 죽을뻔했던 위기들...

이제 더 이상 집 때문에 울지 않을꺼야 라고 다짐하면서도 또 어느새 밀려온 설움의 기억에 또다시 펑펑 울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전월세를 하지 않고 매매를 하게된 영향 가운데

그때 영풍문고에서 싸들고 왔던 부동산 책에 대출받아 서울 아파트를 사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영향 또한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보고 계신 사회초년생이 계시다면 부동산 투자 서적을 최대한 많이 읽으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고,

아울러 폭락론을 외치는 책은 시간과 돈 낭비이니 굳이 돈주고 사지 마시길 당부드립니다.

당시 부동산 책엔 역세권 아파트를 사야 한다, 평지 아파트를 사야한다 뭐 그런 내용도 있었습니다만

길음역, 미아삼거리역 가까운 아래쪽 평지 아파트는 25,000을 훌쩍 넘어가는 엄청난 가격인지라 당시 이런 저런 모든 방법을 동원한 영끌을 해도 어려운 금액이라 너무나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내가 전철역 없는 곳에서 출퇴근하면서 고생했던게 많이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티비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런 럭셔리 뿅뿅 아파트에서의 삶은 마치 꿈처럼 행복하기만 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불에 타죽을 일도 없고,

연탄가스 마시고 죽을 일도 없고

한겨울 고통스런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고,

마당에서 얼음깨서 세수 안해도 되고

한여름 푸세식 화장실 악취 안맡아도 되고,

방에서 나무 썩는 곰팡이 냄새 안 맡아도 되었습니다.

또한 달콤한(?) 신혼생활의 즐거움과

회사 출퇴근은 힘들어도 내 스스로 돈을 번다는 뿌듯함도 있었구요.

게다가 옆집과 윗집 아랫집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세상에 20대 신혼부부가 집을 사서 들어왔대~~ 어머~ 하면서 놀라기도 했구요ㅋ

그렇게 시골 흙수저에게 일어난 꿈만 같던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다가

이듬해인 2006년, 생각치도 못했던 대사건이 벌어졌는데요.

때맞춰 노무현 시즌1, 서울 수도권 아파트값 대폭등이 터졌습니다.

마침 2기 신도시인 판교 청약이 있었고, 판교 청약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기존 아파트 매수 행렬에 동참하면서 강남, 분당, 용인을 비롯한 인근 지역들 집값을 자극하게 되었구요.

때마침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논란, 그리고 파주운정 한라비발디 고분양 소식을 비롯해

빅뉴스로 터진 인천검단신도시 발표 뉴스가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끼얹게 됩니다.

강남 및 인근 지역에서 시작된 부동산 폭등이 서울 전역을 휩쓸며 경기도까지 번져나가고

하루에도 자고 나면 집값이 무시무시하게 폭등하기 시작합니다.

9시 뉴스 첫보도가 집값 폭등으로 시작했고

회사에서도 점심 먹을때 주제가 집값 얘기였으니까요.

강남, 용인 등의 상승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집값 폭등의 절정기가 되니 노도강에도 상승의 물결이 들어왔고

1.8억에 샀던 집이 순식간에 3억을 넘어서면서

8천이던 전세는 1.8억이 되었습니다. 헉!!

정말 그때 영끌 매매를 안하고 8천에 전세를 들어갔더라면

높아진 전세값에 재계약도 못하고 다시 옥탑으로 쫒겨날 뻔 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빠듯한 월급에 어떻게 전세를 1억이나 올려주겠어요.

지금도 큰 돈이지만 2006년 당시 1억은 정말 지금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큰 돈이었으니까요ㅠㅠ

집값이 올랐다는 즐거움 보다도

전세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다행스런 안도감이 훨씬 더 컸던 순간이었습니다.

소위 요즘 말하는 벼락거지로 전락할 뻔 했던 순간이었네요.

당시 집값 폭등으로 부동산 재테크 열풍도 불었고

살던 집 외에 투자처를 찾다가 아내 명의로 경기 외곽에 미분양 아파트도 하나 계약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갑자기 내집마련도 하고

그 집에서 평생 살거라 생각했는데

3년 반 정도 지났을 무렵 뜻하지 않게 이사를 하게 됩니다.

우리 딸 튼튼이가 태어났고

맞벌이를 하면서 육아 도우미도 쓰고 장모님께서 오셔서 봐주기도 하셨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던 터라

장모님의 육아 도움을 받기 위해 처가집이 있던 동대문구로 이사를 갑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지면서

3억을 돌파했던 집값은 조정을 받았고 약 2.8억 정도에 팔고 떠나게 됩니다.

그때는 요즘 말하는 소위 부린이 시절인지라

살던 집은 전세 놓고 그 돈으로 또 대출끼고 사서 이사를 가는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못했고

이사를 가면 집을 당연히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아내 명의로 줍줍한 경기외곽 미분양 아파트가 있었기에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부동산 지식이나 노하우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전세놓고 그 전세금을 계속 올려받아 투자의 시드머니로 만들었을텐데

그땐 그런 노하우까진 잘 알지 못했고 첫 신혼집을 팔고 떠난 건 아쉬운 일이 되었네요.

(그때와 달리 지금은 전철역 개통 및 뉴타운 효과 등으로 계속 좋아지고 있음)

아무튼 다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십수년 전 사회초년생인 저에게 1억이라는 양도차익은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었고

한달에 100만원씩 10년 가까이 모아야 1억이란 큰 돈이 생기는데

이렇게 내집마련으로 자산을 늘려나갈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걸 경험으로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약 3년 반만에 첫신혼 아파트에서 하산했고

그렇게 신혼의 아름다운 추억들은 모두 앨범 속에 고이 간직하고

동대문구의 아파트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동대문구 어디로 가게 되었을까요? 또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어떻게 펼쳐질까요?

더욱 흥미진진한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출처] <시골 흙수저 마용성 입성기> 제3편 20대의 끝자락, 인서울 아파트 등기치다 (부동산 스터디')

이런 듣보잡들 말에 휘둘리지 마라.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전진하는 사람은 흙수저이든, 무수저이든 등기 치고 갱생할 수 있다. 의지와 실천력의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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