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스터디 카페에서 한 때 왕성한 활약을 하시다 지금은 드문드문 철학적, 인문학적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올리고 계신 우석님의 그 유명한 주저 <부의 인문학>은 반자본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가난이라는 자발적 고행을 택한 어리석은 자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 거대한 망치와도 같은 무엇이었다. 지금 소개할 글은 생태주의, 노동주의, 친환경주의, 사회주의, 평등주의 등 반자본주의의 여러 지류인 여러 '~이즘'(~ism)들에 물들어 부자를 혐오하고, 돈을 경멸하며 자발적으로 가난한 삶을 택했던 중년의 아재가 <부의 인문학>을 읽고 뇌리에 벼락을 맞은 이후 써내려간 후기다. 이 책을 통해 세계관이 뒤집어진 그는 이제 비로소 부를 위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오늘 이 분의 글을 천천히 곱씹는 것만으로 오늘 하루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이 글과 더불어 <부의 인문학>을 다시금 읽고 멘탈을 강화하는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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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 전반을
온통 착각 속에서 보냈다
내가 가난한 착각속에서 살아 왔다는 사실을
깨우쳐 준 책이 우석의 [부의 인문학]이다.
코로나가 언론에 처음 보도되고
미지의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2019년 12월
나는 시골 중학교 정문 앞 작은 빌라에서
혼자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중학생이 된 두 아이를
겨울 방학 동안 아내와 함께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보내고
나 혼자 남은 것이다.
그때 닭 울음 소리 들리던 그 시골 작은 빌라에서
나는 이 책을 만나고 정말 대가리가 깨져버렸다.
내가 단단히 착각하고 살아 왔다는 사실에
현기증과 소름을 동시에 느꼈다.
나는 자본주의 역행자였다.
나는 처음 사업을 시작하고 3개월만에
IMF를 맞이 했다.
그 덕분에 수억의 부채를 안고
서울로 상경하여 수년 동안 부채를 상환했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삶이 시달린 이후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인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 자발적 가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부채 상황이 어느정도 마무리 되었을 때
귀농을 꿈꾸며 귀농학교 지원했는데,
나는 한 여름 매미울음소리에
내 체력의 한계를 여실히 직면하고 귀향을 택했다.
그리고 생태마을 조성사업에
참여하면서 산골에 전원 주택을 함께 짓고
아이들을 시골학교에 보내며
가제 잡는 개울가에서 소박한 행복을 즐거워 했다.
그리고 고향의 선배를 따라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이 모든 과정이 생태주의, 노동주의,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었던
내 자신의 패배의식이 빚은 결과 였다.
나는 도시가 두려웠고, 경쟁이 두려웠다.
나는 부자를 두려워 했고, 자본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상하게도
사업은 돈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나는 그럴 듯한 명분 때문에
이상적 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이런 오만하고 어리석은 자기기만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청춘의 10년 세월을 보냈다.
나는 세상이 아닌 자본주의에
역행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동안 나는 숱한 부동산 패착을 저질렀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리얼머니,
진짜 돈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부동산과 주식이라는 실물 자산이
리얼 머니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출도
소비성 지출과 투자성 지출로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통화팽창 주기가 있고,
그에 따라 적절한 부채 레버리지로
상승하는 실물자산에 투자한 자가
이 자본주의 게임에서 승자가 된다는
당연한 논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차르르 소름이 돋았다.
이 가난의 가치관에 매몰된 10여년의 세월 동안
나는 풍요로 부터 여러차례 도망치고 있었다.
신혼 초 아파트를 매입할 때
경치가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아이들에게 반딧불을 보여준다며
숲세권 나홀로 아파트를 선택했고
그 뒤 미분양 시기에
고향의 도심 한복판 중심가 펜트하우스를
분양가를 할인해주고 잔금도 무이자로
분할 상환 하라는 파격적 제안을
여러차레 받았는데도 번번히 거절했으며
또한 신보에서 1% 이자로
2억을 대출해 가라는 제안도 당당하게 거절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가 부동산 투자 적기였다.
지금 생각하니 굴러들어오는 기회를 발로 차고 있었다.
이 모든 결정에는
내 가난한 가치관이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부채는 절대 가져가면 안되고
집은 주택으로 내가 사는 곳이어야만 하며
부동산 투자는 세입자를 눈물 짓게하는
못된 자본주의 투기 행위였던 것이다.
그렇게 청춘의 기회들이 물러갔고
그 자리에 환경문제를 염려하며
복지사회를 갈망하는
머리띠 두르고 개량한복 입은
시민운동의 연대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니
전교생 12명 남의 시골 중학교에는
차마 보낼 수 없어
인근 소도시의 혁신학교로 전학하고
그전에 살던 전원 주택은 빈집으로 남겨 둔채
학교앞 빌라를 세 얻어
네 식구가 이사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줄곧 변방으로
무대 밖으로 도망치는 삶을 살아왔다.
왜 진보정권이 집권하면
부동산 가격이 오를까?
나는 그동안 신념에 차서 자발적 가난이
생태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의 삶이며
대안교육이 고상하고 의식있는 행위라고
당당하게 표현하며 그런 삶을 추구하여 왔다.
그런데, 2019년 겨울
이 책을 만나면서
한 겨울 칼바람 보다 더 매섭게
나는 난도질 당했다.
이제 그만 정신차리라고!
나는 부동산 가격이
진보정권의 복지정책의 결과
통화가 팽창하면서 급등하게 된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냉정한 현실이
내게는 엄청난 역설이 었던 것이다.
정신차리고 보니
정말로 지옥행 열차는
선의로 포장된 길을 달리고 있었다.
최저임금제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자영업의 몰락
임대료 구제정책의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
오스트리아의 100년전 실책
부자과세의 부작용으로
자본가의 이민을 부추긴 프랑스의 실책
대책없는 진보정치가 몰락한 경제를 이끈
브라질, 그리스, 아르젠티나, 베네수엘라 등의 사례
너무나 뚜렷하고 아찔한 이 사실에 무지했던 나는
나는 쿠바의 공공의료를 찬양했었다.
나는 단단히 착각하고 살아왔던 것이다.
게다가 내게 남아 있는 것 역시
베네수엘라나 쿠바와 다름 없는 수준이었다.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우쳤다.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정치도 결국 자기 이익을 위한 투쟁이다.
진보의 이상적 복지정책과 재정확대가
결국 통화팽창으로 물가와 자산가격을 상승시켜
그 피해가 오히려 가난한 자의 몫이 되었다.
게다가 그 복지재정은 누가 댈 것인가?
그 자원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모든 인플레이션이 화폐현상이라는 사실은
잔인하도록 선명하고 날카로웠다.
그 예리하고 선명한 기본 논리를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다는 것이 무서웠다.
판데믹 보다 더 무서운 가난한 가치관
1944년 브렌튼우즈 체제가 출범하며 환률이 생겼고
1971년 닉스쇼크로 인플레이션이 등장했다는
이 핵심적 자본논리를 나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이 결정적 지식을 왜 생각지도 못했을까?
1971년이후 금태환에서 벗어난 통화는
무한 팽창하고 있으니 당연히 실물자산,
특히 공급이 한정된 부동산의 가치는 급팽창한다.
그래서 수요가 몰리는 입지의
집값이 하락하는 것은 항상 예외적인 현상이며
자산가치는 등락의 싸이클을 그리지만
결국 우상향 하는 속성과 방향성을 지닌다.
단순하지만 삶을 가르는 결정적 지식이었다.
코라나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시기
홀로 남겨진 겨울밤
나는 코로나 판데믹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내 삶의 무지와
뒤 늦게 깨달은 나의 가난한 가치관이 두려웠다.
그런데 그 도덕적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내 아이가 다닌 혁신학교와
공동체 집단에서는 1등에게 상을 주는 것도 거부했다.
그것이 학생인권을 위한 행동이라 주장했다.
운동회날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는 것도
편 가르기라 아니된다 하였다.
경쟁은 나쁜 것이며
부자는 빈자를 착쥐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더불어 함께 연대함이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주관하는 교육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동참했다.
그런데 맙소사, 지금 생각하니 무슨 짓을 한 건가?
청소년 광장에서 토요일이면 밥차로
학생과 청소년에게 밥을 퍼주면서 그 시민단체는
아이들에게 청소년 노동인권을 교육했다.
최저임금을 분명히 기억하고
아르바이트 근로계약을 똑바로 체결하라고 일렀다.
그렇게 그 아이들을 한 끼 밥과 함께
스스로를 노동자의 가치관속에 몰아넣고 있었다.
이것이 정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일이었을까?
나는 점점 지난날이 몸서리 쳐지게 부끄러웠다.
책임을 회피하고
성장을 위한 경쟁을 파괴하며
무책임한 보상과 복지만을 요구하는
그 논리가 진저리치게 거북해졌다.
나는 비로소 알에서 깨어 나온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부끄러웠고
나는 내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책임지는 부담과 고통을 거부하고
가난한 안전과 연대만을 추구하는
그 가난의 논리로 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모임을 탈퇴하고
책장의 책을 모조리 바꿔버렸다.
자발적 가난에서 자발적 풍요로
내게 들어오는 정보를 바꾸어 버렸다.
이것이 이 책을 만나고 난 뒤
지난 2년간의 작업이었다.
나는 이제 솔직해지고 있다.
나는 도덕적 착각에 빠져 살았던 사실을 인정하고
나의 욕망과 자연의 법칙을 따르기로 했다.
시장은 욕망하는 인간의 집합체다.
시장과 자연에서는 도덕적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시장과 자연에서 도덕 규범은 환상이다.
이 명확한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나 또한 어김없이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자본주의 경쟁사회라는 이 명백한 사실을
부인하고 외면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아이들을 왜 필리핀에 보냈던가?
사실 캐나다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부족했다.
그것을 생태적이며 도덕적으로 포장했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만 인정했다.
더불어 함께 가난해지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익과 보상 없이는 경쟁이 없고
경쟁이 없다면 발전과 성장이 없음을 인정했다.
그 경쟁을 받아들이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성숙한 자세임을 인정했다.
자유에는 경쟁, 노력,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자유는 성숙한 만큼 감당할수 있다는 사실을
가난한 자들은 자유를 감당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무조건 열심히 살면 무조건 열심히 망한다는
이 냉정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남겨진 두 달 동안
이 책을 통해 나는 삶의 전화기를 맞이 했다.
그 뒤 돈이 되는 곳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보니
유일하게 오르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이 부동산이고
상대적 입지가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고
그 가격이 학군을 결정하고,
주거문화를 결정하고
아비투스를 결정하고,
그래서 계급이 정해지고
그 결과 이 사회는 분명 자본계급사회라는
거부할 수 없는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나도 그 땅에 입성하고자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돈이 없고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고
투자를 시작했다.
돈이 되는 곳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가장 큰 기업에 투자하고
가장 비전 있는 기업에 투자하고
그렇게 자산을 모아
가장 좋은 입지에 들어가는
기본 공식을 따르기로 했다.
세상이 평등해야 한 다는 것은 대단한 기만이다.
평등은 자연적이지도 않고 생물학적이지도 않다.
평등은 오직 인간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는
자기 기만이다.
나는 그동안 너무 엉뚱한 곳에서 삽질을 해왔다.
현명한 전략 없이 독립적 통제권 없이
무조건 열심히만 외쳤던 것은 몰락의 지름길이었다.
진짜 현실을 외면한 멍청한 노력이었다.
내 무대가 아닌, 내 자리가 아닌
타인의 자리에서 그것도 가난의 자리에서
몸부림 치며 시간을 탕진했다.
1997년 그 IMF에서
나는 지긋지긋한 돈의 핍박을 고스란히 체험했다.
그리고 다시 그 길을 가지 않기위해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지금 이 약세장에서도
나는 멘탈을 기키며
투자의 시장에서 견디고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의 풍요로운 내 삶을 창조하고 있다.
이 전폭적 삶의 전환은
결국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
[출처] 가난한 가치관을 깨부수다 (나인해빗 빡돈미션)|작성자 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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