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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자유 자극제

이념 과잉과 위선을 청산해야 시장이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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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쓴 칼럼 하나를 다시 끄집어낸다. 연초에 게재된 칼럼이나 지금 읽어도 느끼는 바가 적잖다. 일독을 권한다.

이 정부의 정책이나 언행을 보면 마찬가지로 ‘이념 과잉’과 ‘위선’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념의 과잉은 일찍이 예견되었다. 정권 초기 경제학 교수들끼리 얘기를 나누다 내기를 건 적이 있다. 이번 정권 들어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될 건지. 다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쪽에 거는 바람에 내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헨리 조지 같은 철 지난 반(反)시장적 이념으로는 절대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을 거라는 건 명확했다. 그리고 소득 주도 성장이 설혹 성공한다 해도 양극화는 더 악화될 것이라 우려했다. 사실 소득 주도 성장은 비주류인 후기 케인지언의 임금 주도 성장의 변종인데 우리나라 양극화의 주범은 자산 격차, 특히 어떤 주택을 소유하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임금 격차를 줄여도 해소가 난망하다. 이념에 경도되다 보니 번지수를 잘못 잡은 대표적인 정책이다.(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칼럼 전문)

이러다 진짜 '범 내려온다'

요즘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가 그야말로 대세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의 리듬을 느끼세요(Feel the Rhythm of Korea)’란 홍보 영상엔 판소리를 재즈로 재해석한 흥겨운 선율에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단원들의 막춤에 가까운 군무가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범 내려온다’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수궁가의 한 토막이다. 토끼 간을 구하러 육지에 올라오느라 기진맥진한 자라가 토끼를 발견하고 ‘토(兎) 선생’을 부른다는 게 발음이 헛나와 ‘호(虎) 선생’을 부르는 바람에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오는 장면이다. 선조들의 ‘아재 개그 격’ 해학이다.

사실 ‘범 내려온다’를 처음 들었을 때 박지원의 소설 ‘호질(虎叱)’의 한 장면인 줄 알았다. 호질은 ‘호랑이가 꾸짖는다’는 제목 그대로 뛰어난 학식과 고매한 인품으로 명성을 떨치는 ‘북곽 선생’과 절개를 지켜 열녀로 소문난 ‘동리자’의 부도덕성을 꾸짖는 내용이다. 겉으로는 이상적인 성리학 이념을 내세우지만 속은 위선으로 가득 찬 북곽 선생이 머리를 조아리고 아첨을 하자 호랑이가 “내가 들으니 ‘유(儒·선비)’는 ‘유(諛·아첨하다)’라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나”라는 장면이 압권이다.

필자는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중시하던 북학파 박지원이 호랑이 입을 빌려 꾸짖은 것은 단지 양반들의 위선뿐 아니라 성리학의 관념성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리학 이념의 난해성은 칸트 ‘저리 가라’다. 본체인 이(理)와 현상인 기(氣)가 분리되어 있느냐 같은 논쟁에서 보듯 그야말로 형이상학의 끝판왕이다.

이 정부의 정책이나 언행을 보면 마찬가지로 ‘이념 과잉’과 ‘위선’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념의 과잉은 일찍이 예견되었다. 정권 초기 경제학 교수들끼리 얘기를 나누다 내기를 건 적이 있다. 이번 정권 들어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될 건지. 다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쪽에 거는 바람에 내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헨리 조지 같은 철 지난 반(反)시장적 이념으로는 절대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을 거라는 건 명확했다. 그리고 소득 주도 성장이 설혹 성공한다 해도 양극화는 더 악화될 것이라 우려했다. 사실 소득 주도 성장은 비주류인 후기 케인지언의 임금 주도 성장의 변종인데 우리나라 양극화의 주범은 자산 격차, 특히 어떤 주택을 소유하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임금 격차를 줄여도 해소가 난망하다. 이념에 경도되다 보니 번지수를 잘못 잡은 대표적인 정책이다.

최근 정부는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87%는 에너지, 즉 발전 과정에서 나온다. 발전 단가에 있어 원자력이 월등히 낮고 그다음으로 석탄, LNG, 유류, LPG 그리고 꼴찌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다. 원자력은 위험 회피 비용을 고려할 경우 단가가 훨씬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발전원별 이산화탄소 배출계수를 보면 석탄이 ㎾당 991그램, 석유가 782그램, LNG가 549그램, 원자력이 10그램, 마지막이 신재생에너지다. 따라서 탄소 중립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화력발전소와 유류발전소뿐 아니라 LNG발전소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신재생에너지로는 가격은 둘째치고 발전 용량이 부족해 이 공백을 채울 방법이 없다. 유일한 방법은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공급량도 늘어나고 날씨에 따른 변동성도 줄여야 하는데 이는 아직 요원하다. 즉, ‘탈원전’이란 이념과 ‘탄소 중립’이란 목표가 서로 상충하게 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념을 앞세우다 보니 현실에 충돌이 생긴 또 다른 예다.

청문회 때 드러난 수많은 장관 후보자의 행적부터 검찰 개혁 그리고 최근의 대법원장 사태까지, 이들의 위선적 언행은 작년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1등을 ‘아시타비(我是他非)’, 2등을 ‘후안무치(厚顔無恥)’로 꼽을 정도다. 아직 3차 재난지원금 지급도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4차 재난지원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지급 시기가 3월이라고 한다. 4월 7일 지자체 보궐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매도 금지 해제는 5월 3일로 선거 직후다. 타이밍이 절묘하다. 시중에 차라리 4차 재난지원금은 4월 6일 지급하고 공매도 재개는 4월 8일로 하지 그러지 않았냐는 비아냥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 법이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인 호랑이는 일제강점기 대대적인 해수 구제 사업으로 1921년 대덕산에서 사살당한 호랑이를 마지막으로 남쪽에서는 멸종했지만 아직도 간헐적으로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 진짜 경제 파탄이라는 범 내려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전면 폐기되지 않는 이상 무너진 시장이 복원되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게다. 애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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